
4~5세는 유아 발달에서 ‘관계의 무게’가 달라지는 시기다. 이전까지는 부모 중심의 세계에서 움직이던 아이가 이제는 또래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정의하기 시작한다. 친구라는 개념이 생기고, 규칙을 이해하며, 사회적 기대에 반응하는 능력이 눈에 띄게 발달한다. 동시에 부모의 고민도 깊어진다. “왜 친구랑 자꾸 싸울까?”, “규칙은 아는 것 같은데 왜 안 지킬까?”, “우리 아이 사회성이 부족한 건 아닐까?” 같은 질문이 반복된다. 이 글은 4~5세 유아의 사회성·정서·인지 발달을 충분한 분량으로 설명하고, 규칙과 관계를 배워가는 과정에서 부모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현실적인 관점에서 안내한다. 비교와 조급함을 내려놓고, 아이가 사회적 존재로 성장하는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 목적이다.
관계가 넓어지는 시기
4세를 지나며 아이의 세계는 눈에 띄게 넓어진다. 집과 가족 중심이던 생활에서 벗어나, 또래와 함께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난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부모가 보지 않는 공간에서의 경험이 아이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이 시기의 아이는 친구라는 존재를 단순한 놀이 상대가 아닌, 감정을 주고받는 대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같이 놀자”, “내 친구야”, “저 친구는 싫어” 같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사회성 발달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신호다.
하지만 관계가 넓어질수록 갈등도 함께 늘어난다. 장난감 문제로 다투고, 차례를 기다리지 못해 충돌이 생기며, 말로 상처를 주고받는 상황도 나타난다. 부모는 이런 모습을 보고 불안해지기 쉽다.
“왜 이렇게 친구랑 싸울까?”, “우리 아이만 유독 문제를 일으키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하지만 4~5세의 갈등은 사회성 부족의 증거가 아니라, 사회성을 배우는 과정 그 자체다.
이 시기의 사회성은 이미 완성된 능력이 아니다. 연습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면서 서서히 다듬어지는 기술에 가깝다. 그래서 부모의 역할 역시 ‘문제 해결자’가 아니라 ‘해석을 돕는 안내자’에 가까워진다.
규칙과 감정의 충돌
4~5세 유아는 규칙의 개념을 인지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한다. “차례를 지켜야 한다”, “순서대로 해야 한다”,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는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이해와 실천 사이에는 여전히 큰 간극이 존재한다. 규칙이 자신의 욕구와 충돌하는 순간, 아이는 쉽게 감정에 휘둘린다.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는 동안의 좌절을 조절하지 못한다.
이 시기의 아이는 공정성에 대한 감각이 발달한다. “왜 나는 안 돼?”, “왜 저 친구만 해?” 같은 질문은 불만이 아니라, 사회적 규칙을 이해하려는 시도다.
문제는 이 공정성 감각이 아직 매우 자기중심적이라는 점이다. 아이는 자신의 입장에서 공정함을 판단하며, 타인의 관점까지 동시에 고려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또래 관계에서 다툼이 잦다. 장난감을 빼앗고, 규칙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며, 친구의 감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다. 이는 이기적인 성격 때문이 아니라, 발달 단계상의 특징이다.
언어 능력이 발달하면서 말로 상처를 주는 상황도 생긴다. 아이는 말의 힘을 실험하는 단계에 있다. 어떤 말이 어떤 반응을 불러오는지 경험하며 사회적 언어를 배운다.
이때 부모가 모든 상황을 즉각적으로 바로잡으려 하면, 아이는 규칙을 외부 통제로만 인식하게 된다. 반대로 아무 개입도 하지 않으면, 아이는 기준을 잃고 혼란을 느낀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결과보다 과정에 대한 피드백이다. “왜 그렇게 했니?”보다는 “그때 친구는 어떤 기분이었을까?”처럼 생각을 확장시키는 질문이 도움이 된다.
부모의 사회성 지원
4~5세 사회성 발달에서 부모의 역할은 ‘대신 해결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관계를 해석해주는 사람’이다. 아이가 친구와 갈등을 겪었다고 해서 즉각 개입해 정답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
먼저 필요한 것은 아이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것이다. “오늘 어떤 일이 있었어?”라는 질문은 문제를 캐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도록 돕는 출발점이다.
그 다음에야 규칙과 관점을 함께 짚을 수 있다. “네 입장에서는 속상했겠다”와 “그런데 친구 입장에서는 어땠을까”를 동시에 다루는 것이 핵심이다.
사회성은 가르친다고 바로 생기지 않는다. 반복되는 경험과 대화를 통해 서서히 체화된다. 그래서 같은 문제를 여러 번 이야기하게 되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정상적인 과정이다.
부모가 가장 흔들리는 지점은 비교다. 다른 아이와 비교하며 “왜 우리 아이는 아직 이럴까”라는 생각이 들기 쉽다. 하지만 사회성 발달 역시 속도와 방향이 모두 다르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성 높은 아이’가 되라는 요구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실수해도 다시 시도할 수 있다는 안전감이다.
가정에서의 관계는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연습장이 된다. 부모와의 대화 방식, 갈등 해결 방식은 그대로 아이의 사회적 모델이 된다.
완벽한 친구 관계를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갈등을 겪고, 조율하고, 다시 관계를 회복하는 경험이 쌓이는 것이 중요하다.
4~5세는 사회의 규칙을 배우기 시작하는 입구에 서 있는 시기다. 이때 부모가 함께 걸음을 맞춰준다면, 아이는 훨씬 안정적으로 관계를 확장해나갈 수 있다.
지금 아이가 겪는 작은 갈등들은 모두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연습이다. 그 과정을 지켜보고 함께 해석해주는 것만으로도, 부모는 충분히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