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를 키우다 보면 어느 순간 문득 “나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루의 대부분이 아이 중심으로 돌아가고, 나를 설명하던 역할과 이름이 하나씩 사라지면서 부모는 점점 ‘누군가의 보호자’로만 존재하는 느낌을 받는다. 문제는 이 감정이 특별한 사건 뒤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일상 속에서 누적된다는 점이다. 어느 날 거울을 보며 낯설어지거나, 예전의 관심사에 더 이상 마음이 가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상실감은 또렷해진다. 이 글은 육아 중 부모가 ‘나를 잃었다’고 느끼는 감정이 왜 생기는지, 그 감정이 이기적이거나 부적절한 것이 아님을 설명한다. 또한 이 시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완전히 예전의 나로 돌아가려 하기보다 새로운 정체성을 어떻게 다시 세워갈 수 있는지를 현실적인 관점에서 다룬다. 육아 속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변화하고 있는 나를 이해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예전의 나는 어디로 간 걸까
육아를 시작하면 많은 것이 바뀐다. 하루의 시간표가 달라지고, 우선순위가 달라지며, 관심사의 중심도 자연스럽게 이동한다. 처음에는 이 변화가 당연하게 느껴진다. 아이가 어리니, 지금은 아이가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부모는 점점 묘한 공허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부터 ‘나’에 대해 설명할 말이 줄어든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요즘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바로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하루를 돌아보면 아이를 위해 한 일은 또렷한데, 나 자신을 위해 한 일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이때 부모는 종종 죄책감을 느낀다. “아이를 키우면서 이런 생각을 해도 되나”, “다들 이렇게 사는데 내가 유난인 건 아닐까”라는 의문이 뒤따른다. 그래서 이 감정을 애써 눌러두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눌러둔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를 잃었다는 감각은 육아가 잘못되고 있다는 신호가 아니다. 오히려 삶의 구조가 크게 바뀌었을 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반응에 가깝다. 문제는 이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 채 방치할 때 생긴다.
육아 속에서 정체성이 흐려지는 이유
육아 중에 ‘나’를 잃었다고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역할의 집중 때문이다. 아이가 어릴수록 부모는 보호자, 양육자, 관리자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하루의 대부분이 이 역할 안에서 흘러가면, 다른 정체성이 설 자리는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특히 사회적 관계가 줄어드는 시기에는 이 감각이 더 강해진다. 출퇴근을 하던 시절, 자연스럽게 나를 설명해주던 직업적 정체성이나 인간관계가 끊기면, 부모는 스스로를 규정할 언어를 잃는다. 그 자리를 ‘엄마’, ‘아빠’라는 단일한 역할이 채운다.
또한 육아는 즉각적인 보상을 주지 않는 노동이다.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어가지만, 결과는 천천히 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부모는 성취감보다 반복감을 더 자주 느낀다. 반복은 안정감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존재감을 희미하게 만들기도 한다.
SNS나 주변과의 비교도 영향을 미친다. 누군가는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자기 삶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고, 누군가는 여전히 취미와 인간관계를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이 모습을 보며 부모는 “나는 왜 이렇게 사는 걸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이 비교가 현재의 나를 과거의 나 혹은 타인의 삶과 직접적으로 겹쳐놓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육아라는 큰 변화 속에서 ‘완전히 이전과 같은 나’를 유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바뀌고 있다는 관점
육아 중 느끼는 상실감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나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전과 다른 형태로 재구성되는 중일 수 있다. 예전과 같은 시간 배분, 같은 관심사를 유지하지 못한다고 해서 ‘나’가 없어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 시기에는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 과거의 나와 비교하는 대신, 현재의 조건 안에서 나를 정의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긴 취미 활동이 어렵다면 짧은 관심사라도 유지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완벽한 회복보다 연결을 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나만의 시간’을 거창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하루 중 10분이라도 의도적으로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있다면, 정체성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시간이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인식이다.
육아 속에서의 나는 예전보다 느리고, 단순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이전에는 없던 감각과 능력이 함께 자라고 있다. 이 변화를 인정하지 않으면, 부모는 계속 과거의 자신을 애도하게 된다.
다시 나를 찾으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육아 중 나를 잃었다고 느낄 때, 많은 부모는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생각은 오히려 부담을 키운다. 지금의 나는 예전과 다른 조건, 다른 책임, 다른 리듬 속에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어가는 것이다. 완전히 단절된 것처럼 느껴지는 나와의 연결을 아주 작은 방식으로 다시 잇는 것이다. 그 연결은 언젠가 지금의 나를 설명하는 새로운 기준이 된다.
부모로서의 나와 개인으로서의 나는 경쟁 관계가 아니다. 서로를 잠시 가릴 수는 있지만, 어느 하나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육아의 시기가 지나면, 지금의 경험은 또 다른 형태의 나를 만들어낸다.
지금 나를 잃었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내가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변화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뜻일 수 있다. 이 변화를 조급하게 판단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육아 속에서의 나는 이전보다 단순해졌을지 몰라도, 결코 얕아지지는 않았다. 이 시기를 통과한 뒤, 부모는 이전과는 다른 깊이의 자신을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