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희 아이는 새로운 장소에 가면 꼭 제 손을 잡고 있어야 안심합니다. 처음 가는 키즈카페나 놀이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적응하지만, 그 과정에서 보이는 불안한 표정을 볼 때마다 ‘이게 정상인 걸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빠는 주중에 거의 집에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저와 보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았고, 그래서인지 아이는 아빠가 옆에 있어도 제가 보이지 않으면 금방 저를 찾곤 합니다. 분리불안이라는 게 단순히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직접 겪어보니 알게 됐습니다.
애착과 불안, 경계는 어디일까
‘엄마 껌딱지’라는 표현을 들으면 보통 두 가지 반응이 나옵니다. “애착이 좋은 거 아니야?”라는 긍정적인 시선과 “이러다 독립심이 안 생기는 거 아냐?”라는 걱정 섞인 시선입니다. 사실 둘 다 일리가 있습니다. 엄마를 좋아해서 붙어 있는 건 건강한 애착의 신호지만, 엄마와 떨어지는 것 자체가 견딜 수 없는 고통이라면 이는 불안에서 비롯된 반응일 수 있습니다.
불안이라는 감정은 원래 생존에 필요한 것입니다. 위험을 감지하고 경계하는 본능이죠. 어린아이는 이 불안을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에 울고, 엄마가 달래주면서 자연스럽게 애착이 형성됩니다. 배가 아플 때, 천둥소리가 무서울 때, 넘어져 다쳤을 때 엄마가 안아주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아이는 ‘엄마가 있으면 안전하다’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만 3세가 지나도 여전히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극심한 불안을 느끼거나, 유치원에 갈 때마다 하루 종일 울고 활동을 전혀 하지 못한다면 이는 발달 수준에 비해 지나친 반응일 수 있습니다. 대상 항상성, 즉 엄마가 지금 내 눈앞에 없어도 다시 돌아온다는 믿음이 자리 잡으면 분리불안은 자연스럽게 줄어듭니다. 하지만 그 믿음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으면 아이는 매번 엄마와의 분리를 ‘엄마를 영영 잃는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저는 아이가 제 뒤를 졸졸 따라다닐 때, 이게 애착인지 불안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억지로 떼어놓기보다는 조금 더 천천히 기다려주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부모 대응법, 차분함이 답일까
분리불안을 보이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가장 많이 듣는 조언이 “엄마가 흔들리지 말고 차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아이는 부모의 표정과 목소리를 보고 상황을 판단하니까요. 엄마가 불안해하면 아이도 ‘이 상황은 위험한 거구나’라고 학습하게 됩니다. 하지만 솔직히 이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아이가 대성통곡하며 매달릴 때,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질 때, 부모도 사람인데 어떻게 늘 평온할 수 있겠습니까.
제 경험상 중요한 건 ‘완벽하게 차분한 것’보다 ‘불안해도 다시 중심을 잡으려는 태도’였습니다. 아이가 울 때 저도 속으로는 당황스럽고 조급했지만, 일단 아이를 꼭 안아주고 눈을 맞추며 “엄마 여기 있어, 괜찮아”라고 말했습니다. 몰래 나가는 건 절대 금물입니다. 아이는 엄마가 사라진 이유를 모르면 더 큰 불안을 느낍니다. 차라리 울더라도 “엄마 잠깐 다녀올게, 이따 저녁에 만나자”라고 확실히 말해주는 게 낫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건 아이의 감정을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괜찮아, 무서운 거 아니야”라고 부정하기보다 “사람이 많아서 긴장됐구나”라고 말해주는 게 훨씬 효과적입니다. 저는 처음에 아이가 긴장할 때마다 “무서운 거 아니야”라고 말했는데, 나중에 보니 아이는 오히려 자기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더 위축되더군요. 감정을 인정받은 아이는 점차 스스로 조절하는 법을 배웁니다. 그게 자기조절 능력이고, 성인이 된 뒤 회복 탄력성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예측 가능한 일상도 큰 도움이 됩니다. 불안이 높은 아이일수록 규칙적인 생활 패턴이 안정감을 줍니다. 등원 시간, 놀이 시간, 저녁 식사 시간이 일정하면 아이는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예측할 수 있고, 그것이 불안을 줄여줍니다. 저는 아이와의 하루를 되도록 비슷한 흐름으로 유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물론 완벽하게 지킬 수는 없지만, 큰 틀만 유지해도 아이는 훨씬 안정적으로 보였습니다.
기질 차이, 모든 아이가 같지 않다
같은 양육 환경에서 자라도 어떤 아이는 분리불안이 거의 없고, 어떤 아이는 유독 심합니다. 왜 그럴까요? 여기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합니다. 첫째는 애착 유형입니다. 안정된 애착을 가진 아이는 엄마가 잠깐 자리를 비워도 곧 돌아올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분리를 잘 견딥니다. 반면 불안정 애착의 경우 관계 자체가 불안하기 때문에 분리 상황이 훨씬 고통스럽습니다.
둘째는 부모의 양육 태도입니다. 과잉보호적인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혼자 무언가를 시도할 기회가 적어 세상에 대한 경험이 부족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낯선 상황에 대한 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는 환경적 요인입니다. 최근 가족의 사망, 부모의 이혼, 이사 같은 큰 변화가 있었다면 아이는 일시적으로 불안이 심해질 수 있습니다.
넷째는 기질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불안 수준이 높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같은 상황에서도 더 쉽게 긴장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립니다. 이는 잘못이 아니라 그 아이의 특성입니다. 다섯째는 유전적 요인입니다. 부모 중 불안장애가 있는 경우 아이도 불안 성향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저는 어릴 때 굉장히 불안이 높은 아이였습니다. 놀이터에 가도 미끄럼틀을 거의 타지 않았습니다. 떨어질까 봐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저를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으셨습니다. “괜찮아, 안 타도 돼”라고 말씀해주셨고, 덕분에 저는 제 속도로 조금씩 시도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저에게는 가장 적절한 방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마다 기질은 다릅니다. 중요한 건 억지로 바꾸려 하기보다 인정해주고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분리불안은 나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완화되기도 합니다. 부모가 등대처럼 중심을 잡아주면 아이는 점차 스스로 조절하는 힘을 기르게 됩니다. 완벽하게 차분할 필요는 없습니다. 불안해도 다시 중심을 잡으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배웁니다. 아이의 감정을 인정해주고, 예측 가능한 일상을 만들어주고, 세상이 안전하다는 믿음을 주는 것. 그게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RPH37nv3zpo, https://www.youtube.com/watch?v=-3h-h4Szjd4